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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51203-10]홋카이도

첫 설국여행 2일차

참지않긔 2020. 5. 20. 16:08

♥ 딱히 갈 곳 없는 요즘. 지난 추억을 떠올려 보아요. ♥

 

실수였다.

공짜라는 강렬한 유혹에 못이겨 오후 6시에 호텔 로비에 있는 공짜 커피를 마셔버렸다.

새벽 1시쯤 잔 것 같은데 3시에 깨버렸다.

흐흐흐흐

원래 둘쨋날은 오타루로 갈려고 했는데 일찍 깬 김에 일정을 바꿨다.

이게 혼자다니는 맛 아니겠어요.

 

그리하여 오늘의 일정은 비에이 -> 후라노 -> 호로마이.

그야말로 빡셈이 느껴지는 일정이다.

새벽은 추우니까 지하철 타고 JR삿포로 역으로 간다.

역에서 에키벤을 사들고 아사히카와까지 가는 기차에 착석한다.

배고프지 않아도 먹어봐야 할 에키벤.

지역색이 잘 묻어난 곳도 있고 그냥 평범한 곳도 있고 한데

어쨌거나 결국은 내 입에 맛는 걸 선택하게 된다.

맛으로 먹나

분위기로 먹지

좀 차갑긴 하더라...

해가 뜨기 시작한다.

이 여행에서 자주 들었던 노래가 김필의 '청춘'인데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가 겨울이라는 계절과 어우러져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었다.

절로 눙물이..

처연함은 잠시 묻어두고 아사히카와를 거쳐 드디어 비에이에 도착.

역에서 나오니 눈밭이 펼쳐져있다.

아... 어쩐다. 택시투어 비싸던데..

일단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전망대가 있는 구청(?)으로 가본다.

구청에 꼭대기로 올라가면 사방으로 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이제 또 어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역 뒤로 넘어가본다.

정보가 너무 없으니 이렇게 틈틈이 방황을 하게 된다.

결론은 비싸도 어쩔 수 없다.

택시투어 하세요...

 

비에이가 유명한 건  TV광고 때문인데 무슨 나무, 무슨 나무 하면서 꽤 유명한 스팟들이 있다.

다음 해 6월쯤에 다시 홋카이도 여행을 가서 택시투어를 했는데

우리나라와 느낌이 다른 게, 높은 산은 저 멀리 있고 둥글둥글 언덕들이 쫘악 펼쳐져있는 포근한 풍경이였다.

마치 어렸을 때 그림 그리면 언덕들 겹쳐 놓고, 그 중 어느 언덕에 나무 하나 그려놓은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아오이이케라고 '청의호수' 혹은 '푸른호수'라고 하는 그림같은 곳도 있다.

꽤 볼 곳이 많았는데 역 주변만 왔다갔다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정보력은 중요하다.

계획대로 움직이는 여행보다 자유로운 걸 좋아하지만 가서 뭐가 하고 싶은지는 좀 생각을 했어야...ㅎ

 

아쉬움을 뒤로하고 후라노로 점프.

어차피 호로마이로 갈려면 다 거쳐가게 되어있으므로 일단 후라노로 간다.

(음..? 그랬던가..? 바로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으므로 패쓰.)

후라노 역시 이 곳에서 뭔가를 한다기 보다 주변에 이것저것 있는데

이것도 택시를 타거나 렌트를 해야 한다.

즉,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

프린스 호텔에 있는 닝구르테라스 가보고 싶었는데 셔틀버스 시간이 안맞아서 포기.

아... 나 뭐하러 여기까지 간겨...ㅎㅎ

셔틀 빨리 끊기니까 계획 잘 세우시길..

그렇다면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 하니데... 후라노에서 유명한 오므라이스 카레를 먹으러 간다.

그 이름도 잊혀지지 않을 유아독존.

허름한 통나무집이다.

2층으로 올라가 치즈오므라이스를 시켰다.

맛있는데 느끼하다.

소스는 더 달라고 하면 주니까 주저하지 말고 리필하자.

느끼한 음식에 강한 사람은 드셔보시길.

완전 느끼.

밥을 먹고 또 하릴없이 기차시간을 기다리면 마을을 터벅터벅 걸어본다.

눈이 온다.

세차게 온다.

미친듯이 온다.

마을 끝에 있는 언덕을 걷기도 하고 어느 길로 가다가 신사를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마을을 크게 한바퀴 돌아 다시 역으로 간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호로마이 역으로 간다.

이런 눈보라를 뚫고 갔단 말이지...?

나 부산 사는데.

이건 거짓말이다.

이렇게 눈이 미친듯이 오다니.

그 와중에 기차가 달려..?

평생에 볼 수 없었던 광경의 연속이다.

눈보라를 뚫고 무사히 호로마이역에 도착.

실제 역 이름은 이쿠토라역.

놀랍게도 지금은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어둑어둑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두워진 날씨와 조명이 어우러져서 영화같은 혹은 그림같은 느낌을 만들어 낸다.

잘 안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나 눈이 왔다니까요.

정말 미친듯이.

날씨 때문인지 더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호로마이역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영화 철도원 기념관이 있다.

2년전인가 돌아가신 켄상.

저 사진이 왜 이리 슬프지...

그 분 영화는 철도원 하나 봤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아도 뭔가 이미지가 상당히 강렬했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그런 분이다.

티비에서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안타까웠는데..

이때가 철도원 촬영 15주년이라 기념 기찻표(?) 팔길래 냉큼 산다.

당일 날짜를 찍어주기 때문에 그 때를 기억하기 좋은 기념품이 된다.

뽀샵한거 아니다.

진짜 분위기가 이랬다.

영화같기도 하고 만화같기도 하고 그림같기도 하고.

어둑어둑해진 날과 눈보라가 만나 나는 평생 보기 힘든 멋진... 그렇지만 뭔가 아련한 분위기의 호로마이역이다.

 

동네구경 하고 싶었는데 밤에 어슬렁거리기 뭣하니까 역주변만 살짝쿵 구경하고

눈을 맘껏 맞으며 삿포로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결과적으로 기차여행만 한 것 같은 하루였다.

의미없는 하루였을지도 모르지만 이게 나중에 다시 삿포로를 갔을 때 나름 도움이 됐었다.

욕심부리지 말고 무리하지도 말고 보고 싶은 것을 확실히 보고 오는 그런 여행.

오늘의 교훈.

때로는 계획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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